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이 시대 물질의 소통을 생각하며

이서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7/09/09 [18:28]

▲ 이서영 칼럼니스트.   ©브레이크뉴스

 

가을이다. 이제 한숨 돌릴 만큼 여유로운 바람이 분다. 한여름의 더위는 무척 뜨거워 불에 덴 듯한 사람들을 피서지로 몰아갔다. 덕분에 피서지는 인산인해였고 또한 덕분에 나도 그곳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내가 일했던 곳은 시원한 냇가를 지닌 숲속이었다. 숲은 울창했고 냇가의 물은 차갑고 맑았다. 아니 아침에는 맑았다. 숱한 사람들이 냇가의 차가움으로 뛰어드는 오후쯤이면 흙탕물처럼 탁해졌지만 서늘함을 즐기려는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곳은 주차 공간이 넓어서 100대 이상이 주차할 수 있었는데 곧 차 한 대 더 들어갈 여유없이 빽빽하게 차곤 했고 미처 진입하지 못한 차량들은 왕복 2차선 도로가에 긴 띠를 이루며 주차했다. 차량들이 진입하기 시작한 지 얼마쯤 지나면 마치 1,000개짜리 퍼즐을 와락 바닥에 부려놓았다가 천천히 그 퍼즐들이 맞춰지면서 하나의 커다란 그림이 완성되는 것처럼 곧 각자 자신들의 자리를 잡았고 질서정연한 주차는 완성되었다. 좁은 도로는 늘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았고 이도저도 안 되는 상황에 이르면 교통경찰들이 뛰어와 질서를 잡아주기도 했다. 수백 명의 피서객들이 평상을 차지하고 나면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주방에서 평상까지 음식을 배달하는 젊은 일꾼들은 가벼운 슬리퍼를 신고 간혹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잽싸고 날쌔게 움직였다.

 

그들은 아주 잠깐 숨쉴 틈이 있을 때 알아서 스스로 짧은 호흡의 점심을 챙겨야 했다. 배달되는 음식들을 만드는 이들은 그러므로 늘 더 일찍 작업을 완료해야 했다. 아침에 출근하면 나는 플라스틱 반찬 그릇에 양파, 고추, 마늘을 분량에 맞춰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게 미리 수백 개를 담아놓아야 했다. 주방은 소리소문 없이 몸에 밴 대로 기계처럼 정밀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10시가 갓 넘으면 미리 와서 좋은 자리를 선점한 사람들의 주문이 1시까지 쉬지 않고 이어져서 다섯 종류의 반찬을 담아야 하는 나는 숨쉴 틈 없이 줄곧 부지런히 손을 놀려야 했다.

 

그러다가 어느새 제법 큰 사각통 안의 반찬들이 하나둘씩 비워지면 냉동창고로 뛰어가 김치라든지 깍두기라든지 콩나물이라든지 오이피클 따위를 한 통 가득 채워 뒤뚱거리며 반찬 담는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같은 동작을 무한반복하다보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땀이 옷 사이로 등을 타고 내리는 느낌들이 좀더 구체적으로 느껴졌다. 땀 흘리는 것을 평소에는 무서워했는데 일할 때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땀은 노동의 때에 부득이하게 받아들여야만 할 필요불가결의 것이거나 불가항력의 것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순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피서지의 여름은 그러나 짧다. 이 짧은 시간 동안 냇가의 주인은 수백 대의 차량이 날마다 주차하는 만큼의 돈을 벌었다. 차량 한 대에서 서너 명, 많게는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이 냇가의 주인에게 지불한 대가만큼 주인의 주머니는 두둑히 채워졌고 이렇게 대규모의 행렬을 질서 있게 유지하기 위해 많은 참모들과 일꾼들이 필요했다. 참모들은 대부분 그의 가족들로 이루어졌고 일꾼들은 주로 동네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해마다 일정량의 높은 수입을 십 년 넘게 벌어들이고 있는 주인은 당연히 이 동네의 유지일 수밖에 없다.

 

그는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대형차를 몰고 다닌다. 그는 가끔 나의 북카페에도 온다. 경쾌한 그의 발걸음에 짐짓 약간의 기대를 품고 나는 그를 맞는다. 대개 나는 책 읽어주는 작가지만 또한 늘 나는 생활에 치이는 생활인이므로 나는 그가 북카페에 들러 차 한 잔이라도 마시고 책이라도 몇 권 사서 지인들에게 선물하기를 바라지만 웬걸, 번번이 아니 한 번도 빠짐없이 늘 그는 얼굴만 보여주고 자신의 풍요로운 부와 여유를 자랑한 뒤 홀연히 무대 뒤로 사라진다.


인간은 끊임없이 배워야 산다. 배워야 제대로 살 수 있다. 배워야 나의 자리를 깨달을 수 있다. 깨달아야 답답한 껍질을 벗고 아브락사스의 의미를 비로소 알아볼 수 있다. 나는 결코 너와 분리된 개체가 아니다. 우리는 커다란 틀 속에서 '우리'로서의 '나'일 뿐 '나'로서의 '나'로 끝나지 않는다. 나의 안위는 나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오케스트라의 성공은 지휘자 한 사람만의 힘으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각 파트의 연주자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조화와 균형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한 곡의 연주는 완성되는 것이다. 인간의 삶 또한 그렇다. 한 사람의 뛰어난 천재만으로 시대가 바뀌거나 정신의 흐름이 바뀌는 게 아니다. 시간이 필요하다. 더불어 그를 지지하는, 하나의 커다란 흐름을 형성할 만큼 대규모의 사람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 한 방울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지만 수백 수만 수천만 물방울이 모이면 산도 허물어뜨릴 수 있다. 나의 지식은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다. 1만 권의 책을 읽었다면 나는 1만 명의 지적 선배들의 은혜를 입은 셈이다. 수백억을 벌어 들였다면 수백억이 모이도록 물 한 방울의 역할을 해준 수만 수십만 명의 도움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다. 관계를 형성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때로 능력이 출중하거나 운이 좋아 삶의 때를 만나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하더라도 그것이 온전히 나의 덕일 수는 없다.

 

내가 뛰어난 사람이라면 나를 지지해주고 기다려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곁에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 이것은 받은 자의 당연한 의무이다. 하늘 아래 엄연히 내 것이라고 말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모두 나누는 것이다. 적게 가진 자는 적게 나누고 많이 가진 자는 많이 나누는 것. 이것이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나눌 수 없는 이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물질적으로 나눌 게 없다면 귀하디귀한 긍휼의 마음 한 조각이라도 늘 나누어주어야 한다.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삶이 내게 주는 선물이다. 노동은 천하지 않다. 몸으로 행하는 보시야말로 참으로 귀한 나눔이다. 가진 것이 있다면 아낌없이 나눠라. 그것은 지구별 여행자로서 우리의 당연한 의무이니. 돈, 물질, 지식, 사랑, 지혜ㆍㆍㆍ. 갖지 못한 자가 가난한 자가 아니라 나누(어주)지 못하는 자가 가장 불행하고 가난한 자임을. ebluenote@hanmail.net


**필자/이서영. 북카페 <책 읽어주는 여자 블루노트> 주인장.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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