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랑은 영원히 자신을 성장시키는 경험이다

이서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7/10/11 [07:22]

▲ 이서영     ©브레이크뉴스

 

가을비가 내린다. 촉촉 내린다. 빗물을 가르며 지나가는 차량들은 쏴쏴 파도소리를 흔적으로 남겨놓고 사라진다. 비가 내리고 있어서 파도소리도 들을 수 있다. 빗물과 강물과 바닷물은 소리가 되어 비로소 하나로 만난다. 도로의 딱딱한 표면과 빗물이 파도 소리를 만들어내니 나는 곧 바다를 떠올린다. 포효하는 거친 바다가 아니라 잔잔한 바람에 밀려오는 파도 소리를 떠올린다. 갯벌을 지닌 서해안의 파도를 떠올린다. 동해는 나와 멀었다. 지리적으로 남도에서 자라왔기 때문일 것이다. 동해는 다섯 손가락의 기억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러나 남해와 서해의 기억은 열 손가락으로도 많이 모자라다. 기억이란 이렇듯 개별적인 것이어서 우리는 같은 '바다'를 두고도 서로 다른 풍경을 떠올릴 것이다. 사랑도 그렇겠다. 사랑사랑사랑,이라는 단어 속에 피어오르는 사랑이라는 내밀한 풍경은 너도 나도 그녀도 그도 모두 다르고 낯선 모습이겠다.

 

'킬러의 보디가드'라는 영화를 세 번 보았다. 처음 볼 때는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는데 급급하므로 디테일한 장면이나 복선들을 놓치게 마련이다. 음악도 스토리의 보조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나 두 번 보고 세 번 볼 때마다 조금씩 더 깊고 섬세한 디테일들이 보이고 들리고 느껴진다. 이 영화는 늘 서로를 죽여야만 했던 두 사람이 불가피하게 한 자리에서 만나 이틀 동안 함께 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이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결국 사랑 이야기이다.

 

두 커플의 사랑 이야기 또한 독특하고 게미가 있다. 주인공 마이클은 스스로 트리플A급의 최고 경호원이다. 그는 어느 날 일본 무기상 구로사와를 안전하게 비행장까지 경호하는 임무를 맡는다. 무기상은 비행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이클의 경호는 완벽하게 끝났다,라고 생각하며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 손인사를 나누는 순간 갑자기 피가 튀기고 무기상은 피격되어 즉사한다. 마이클의 명성은 하루 아침에 땅에 떨어져 그는 B급 경호원으로 전락한다. 그는 이제 최고의 차를 몰지도 않고 최고의 사람들을 경호하지도 않는다. 이제는 마약쟁이변호사나 경호하는 임무를 맡는다. 그는 누군가 정보를 흘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가 의심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가 사랑했던, 아멜리아다. 그는 아멜리아를 용서할 수 없어 결국 헤어지고 그녀를 사랑하지만 증오하면서 살고 있다.

 

아멜리아는 인터폴 중앙수사국 요원이다. 그녀는 최근 극비 임무를 부여받았다. 바로 킬러인 다리우스 킨케이드를 안전 경호하여 국제형사재판소로 27시간 안에 멘체스터에서 암스테르담까지 이동하는 것. 그는 구소련연방 벨라루스 대통령에게 고용된 적이 있으나 거절했다. 벨라루스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잔인무도했고 그 결과로 국제형사재판소에서 4개월째 재판 중이다. 그는 수하들을 이용해 증인이 될 사람들을 가차없이 죽이고 있다. 마지막 생존 증인이 바로 마리우스이므로 마리우스는 죽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수송 중 아멜리아는 벨라루스측으로부터 지독한 공격을 받고 두 사람만 겨우 살아남아 안전가옥으로 몸을 숨긴다. 아멜리아는 인터폴 내부 첩자로 인한 정보 유출을 걱정하여 옛 애인인 마이클을 호출한다. 마이클은 자신을 다시 트리플A로 복권시켜주겠다는 아멜리아의 제안에 마지 못해 승락하고 마리우스를 경호하게 된다.

 

티격태격하는 마리우스와 마이클. 둘은 늘 서로 죽여야만 하는 적이었다. 그런데 이제 힘을 합하여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두 사람의 성격은 극단적으로 다르다. 마이클은 완벽주의자이고 깔끔하며 이성적이고 첨단 시스템을 숭배한다. 따라서 마이클의 사랑 또한 계산적이고 이성적일 수밖에 없다. 그는 아멜리아를 사랑하지만 그녀를 신뢰하지 못한다. 그녀는 마이클을 배신한 적이 없다. 그러나 마이클의 오해는 깊어 애증의 시간이 깊어간다. 마리우스의 사랑은? 뜨겁다. 그는 계산하지 않는다.

 

유능한 킬러인 그가 인터폴에 잡힌 것도 그의 사랑인 소냐가 인질로 잡혔기 때문이었다. 그는 소냐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인터폴에게 잡혔다. 그가 증인이 되려는 것도 소냐를 자유롭게 풀어주겠다는 인터폴의 약속 때문이다. 이틀 동안 마리우스와 마이클은 함께하면서 서로의 사랑에 대한 방법과 자세에 대해 알아간다. 마리우스는 소냐가 잡혀 있는 건물 건너편 첨탑 바깥에 그녀가 좋아하는 튤립 꽃바구니를 남겨놓는다. 소냐가 가끔 창밖으로 첨탑 시계를 바라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왜 목숨을 걸고 꽃바구니를 그곳에 굳이 가져다 두느냐고 묻는 마이클에게 마리우스가 대답한다.


"그것이 사랑 아니야? 사랑하는 그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핑계 따윈 있을 수 없지. 계산하는 건 사랑이 아냐. 나는 내 일을 모두 소냐에게 말하곤 해. 그녀에게 말 못할 일이라면 내게도 의미가 없으니까."


마이클은 마리우스와 소냐의 계산 없는 사랑을 보면서 자신의 사랑을 돌아본다. 마이클이 아멜리아의 배신으로 구로사와가 비행기 안에서 피격 당했다고 생각했던 사건의 실마리는 마리우스에게 있었다. 마리우스가 다른 사건을 준비하고 있다가 우연히 늘 쫓고 있던 구로사와를 발견하고 300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원거리 사격으로 구로사와를 피격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아멜리아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던 셈.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이클은 아멜리아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아멜리아가 마이클에게 부탁했던 킬러의 경호를 성공적으로 완수한다. 그가 사랑을 회복하는 순간이다.

 

사랑은 자신을 내려놓는 경험이다. 사랑은 자신의 과거를 늘 리와인드하게 만든다. 사랑은 나를 돌아보고 복기하게 만든다. 킬러의 보디가드는 조금씩 사랑을 배우면서 자신과의 화해에 이른다. 아멜리아 없는 삶은 늘 괴팍하고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는 2년 전에 헤어진 그녀의 사진을 버리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자신을 배신(했다고 여겨지는)한 그녀를 용서할 수도 없다. 그의 삶은 아멜리아와의 결별 이후로 자신감과 안정감이 사라졌다. 타자의 부재로 인한 사랑의 부재는 사실 자신에 대한 사랑의 부재를 뜻한다. 말하자면 내가 나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북돋워주고 인정하지 못하면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관용과 용서와 화해의 세상으로 진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늘 잃을 것을 미리 염려하고 철저히 계산하지만 사실 잃을 것이 있다는 게 삶을 가치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킬러인 마리우스를 통해 배우게 된다.

 

'진정한 사랑은 영원히 자신을 성장시키는 경험'이라고 스캇 펙은 말한다. 우리는 늘 실패인지 성공인지 딱지를 붙일 수 없는 사랑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배울 수 있다. 사랑은 그냥 내게 오는 것이 아니다. 배우고 성장할 준비가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내게 주어지는 선물 같은 것이다. 스캇 펙은 사랑은 자아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여기에서 그가 말하는 자아 영역이란 폐쇄적이고 편협한 자아의 영역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사랑은 단지 느낌이 아니고 깊이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보았다. 사랑은 독립이라는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며 두터운 책임감을 감수하는 것. 사랑은 삶에 직면할 수 있도록 일깨우는 근본적인 힘이지만 그것은 훈련을 통해서만 그 잠재성을 현실로 드러낼 수 있다고 보았다. 사랑은 나와 상대방의 일체감을 향해 가는 성장의 언덕이지만 상대방을 나와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 그 분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사랑은 정신치료의 역할, 즉 힐링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사랑을 통하여 영원히 자신을 조금씩 성장시켜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낭만적인 사랑은 신화에 불과하다. 사랑은 성장이다. 사랑은 자기 희생을 담보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 희생이 아니라 자기 성장에 이른다. 자기 희생의 영역이란 사실 에고의 영역 속에 있는 나를 희생하는 것이다. 즉 편협하고 계산적이고 부정적이고 어두운 나를 희생해야만 한다. 사랑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대리인을 찾는 과정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욕망하고 집착하고 학대하거나 학대를 참아내며 굴종이 사랑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사랑은 대가를 치르는 것이 아니며 일정한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내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순수. 사랑은 늘 변화와 성숙을 요구하지만 이것은 자기 희생이 아니라 결국 자기 확대에 이른다. 사랑은 텅 비어 있던 자신을 채워 나가는 경험이며 자신을 메마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충만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은 계산적인 머리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 아닌가? 그러한 신비의 영역으로 과감히 뛰어든 당신의 용기는 그러므로 매우 아름답고 가상하다. 늘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사랑을 선택한 당신에게 진심을 담아 축하드린다.  ebluenote@hanmail.net

 

**필자/이서영. 북카페<책읽어주는여자 블루노트> 주인장.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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