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최태원 SK회장의 ‘젊은’ 리더십 형성 과정

문흥수 기자 | 기사입력 2017/10/11 [09:48]

 

▲ 최태원 SK그룹 회장     ©브레이크뉴스

 

 

브레이크뉴스 문흥수 기자= 최근 SK하이닉스 컨소시엄이 도시바 메모리 부문 인수라는 대어(大漁) 낚기에 성공하며 최태원 SK그룹 회장(57)의 리더십이 재조명되고 있다.

 

당초 SK하이닉스는 미국과 대만 등 경쟁업체보다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최 회장이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챙기는 등 인수에 대한 강력한 추진력을 보이면서 결국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의 이러한 리더십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재계의 주목과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으나, 대중에게 공개된 내용은 극히 드물었다.

 

이에 브레이크뉴스는 지난 2002년까지 SK 대표이사를 역임한 유승렬 전 사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1990~2000년대 초까지 ‘젊은 최태원’의 리더십 형성 과정에 대해 들어봤다.

 

유 전 사장은 “15년도 더 된 옛날이야기로 치부할 수 있지만, 현재 최 회장의 리더십 기틀은 사실상 그 당시 다 만들어졌다”고 강조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먼저 유 전 사장에 대해 소개하자면, 그는 1975년 주식회사 유공에 신입사원으로 입사, 1980년 SK그룹이 유공을 인수하면서 자연스럽게 SK그룹의 일원이 됐다. 이후 SK그룹 경영기획실(이사)과 SK그룹 구조조정추진본부장(전무, 부사장)을 거쳐 2000년 11월부터 2002년 2월까지 SK주식회사의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다. 그는 돌연 CEO 자리를 스스로 박차고 나와 당시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현재는 벤처솔루션스를 창업해 기업 CEO들을 대상으로 컨설팅 등을 하고 있다.

 

유 전 사장은 사실 최태원 회장과 함께 일한 년 수는 그리 길지 않다.

 

▲ 故최종현 전 SK그룹회장

다만 최 회장의 아버지 故 최종현 전 회장의 측근으로서, 최 전 회장의 경영 마인드를 옆에서  지켜봤던 인물이다. 비서실에 근무하며 최 전 회장의 리더십을 지근거리에 모두 볼 수 있었다.

 

유 전 사장은 “최태원 회장이 미국 유학을 마치고 막 SK에 부장으로 입사한 때부터 회장에 오를 때까지 모습을 잘 알고 있다”면서 “최태원 회장의 리더십 근간은 결국 아버지였다. 최종현 회장의 리더십을 들여다보면, 자연스레 최태원 회장의 리더십도 보인다. 젊은 시절 아버지에게 매일 배운 것이 어디 가겠느냐”고 설명했다.

 

유 전 사장이 기억 속 故 최종현 전 회장은 경영자이기보다는 철저한 ‘사업가’ 였다.

 

회사 매출이 얼마나 올랐는지, 손실이 얼마나 발생했는지, 직원 규모 대비 생산성이 적절한지 등 경영에 필요한 수치들은 최 전 회장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최 전 회장은 틈만 나면 주요 임원들은 모아놓고선 토론하기를 즐겼다고 했다. 토론 주제는 근시안적 경영 문제가 아니었다. 최 전 회장은 가치 창출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가치 경영’에 관심이 높았다.

 

‘회사가 성공하기 위한 요소’, ‘직원이 가진 최대 역량을 발휘 시키기 위해 회사가 취해야 할 조치’, ‘일을 잘하게 만들 수 있는 경영 방식’, ‘구성원의 열정을 이끌어 낼 방법’ 등을 주제로, 하루에 대여섯시간씩 토론을 벌였다.

 

여기서 논의된 내용들은 SK 직원의 필수 교과서인 SKMS(SK Management System)에 상당수 포함되기도 했다.

주제들을 보면 자기계발서에 나옴직한 내용이지만 최 전 회장이 주재하는 회의에선 항상 이론에서 그치지 않았다.

 

“최종현 회장의 경영철학은 한결 같았습니다. 최태원 회장은 최 전 회장에게 아침 저녁으로 이 같은 얘기를 매일 듣고 배웠죠. 지금 최 회장의 리더십의 근간은 결국 아버지인 최종현 회장이 형성시켜 주지 않았겠나 생각합니다”

 

미래사업 결정, 10년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
 
또한 최 전 회장은 회사의 미래 사업을 결정하는 일을 반드시 10년 전부터 준비해왔다.

 

1980년 1월 23일, 직물을 생산하던 ㈜선경은 ㈜유공의 전신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한다. 직물과 석유의 산업 연관성이 전혀 없다는 점을 들며 당시 일각에선 권력의 비호를 받아 가능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유 전 사장은 “갑자기 ‘석유 한번 팔아볼까’ 해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며 “최 전 회장은 이미 70년 초반부터 사우디를 수 차례 오가며 석유 사업 진출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사우디를 방문한 장관도 해내지 못한  석유 수입건을 성사시킬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유공 인수 후 경영 혁신을 통해 대규모 흑자를 기록하는 등 회사가 탄탄대로에 진입하자, 최 전 회장은 바로 다음 미래 먹거리 사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최 전 회장은 선택한 미래 사업은 현재 SK그룹을 대표하는 분야인 ‘통신’이다.

 

80년대 초 통신 산업은 이제 막 발전하기 시작하는 걸음마 단계였다. 차량용 이동전화(카폰)와 무선호출기(삐삐)가 첫 선을 보일 때로, 카폰은 포니자동차 가격보다 비쌀 정도였다.

 

이에 최 전 회장은 한국보다 통신산업이 발전한 미국에서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유공 미국지사에 통신TF(Task Force)를 꾸리고, 현지 통신 전문가들을 불러모은 뒤 통신 사업 진출을 위한 ‘공부’에 들어갔다. 

 

이 TF에는 최 전 회장의 큰누나 최양분 여사의 아들 표문수 전 SK텔레콤 사장도 합류해 통신 관련 연구와 공부에 매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100만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현지 통신 회사를 인수, 각종 실험과 통신사업 진출을 위한 사전 경험을 쌓기도 했다.

 

이로부터 10여년의 시간이 흐른 1994년, 선경은 제1이동통신사인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면서 SK텔레콤의 역사가 시작된다.

 

유 전 사장은 “당시 석유사업 하던 선경이 통신업에 뛰어들었다고 하자, 또 다시 권력의 힘에 기댔다는 비판이 나왔다”면서 “하지만 최 전 회장이 통신 사업을 준비하기 시작한 건 제1이통사 사업권을 따내기 정확히 12년 전 부터였다”고 말했다.

 

이처럼 20년 전 선대 회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 최태원 회장의 모습과 유사한 점이 많다.

 

직물회사로 시작해 정유, 통신을 거쳐 반도체로 이어지는 SK그룹의 사업 영역 확대 이면을 보면, 아버지와 아들은 매우 유사한 경영 방식을 통해 SK그룹을 이끌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2012년 SK의 하이닉스 인수는 최태원 회장의 ‘신의 한수’라는 평이 나올 만큼, 성공적인 M&A로 꼽힌다. 

 

하지만 이 역시 운이 좋았다기 보단 최 전 회장과 같은 방식으로 짧게는 수년 전부터, 길게는 10년 전부터 준비해온 결실이 빛을 발했다. 최근 인수에 성공한 도시바 메모리 부문 역시 마찬가지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

 

도시바가 인수가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선대 회장과 마찬가지로 최태원 회장 역시 다음 ‘미래 사업’을 위한 공부와 준비에 들어가리라 예상해볼 수 있다.

 

오랜 시간 치밀한 공부와 사전 준비 후 M&A를 통해 사업 시작. 이것이 회사를 대기업 반열에 오르게 한 게 SK 오너 일가의 '비기(祕器)'인 셈이다.

 

▲ 젊은시절 최태원 SK그룹 회장     ©브레이크뉴스

 

“젊은 최태원은 배움에 대한 열정이 넘쳤다”

 

최 전 회장이 임원들과의 토론을 통해 그룹 핵심 가치를 만들어 냈다면, 최 회장은 혁신적인 마인드를 배우는데 더 중점을 뒀다.

 

90년 초반, 초임 이사로 재직 중이던 유 전 사장은 이제 막 미국 유학을 마치고 회사로 들어온 최태원 당시 부장에 대해 이같이 기억하고 있었다.

 

“젊은 최태원은 회사에 대한 열정이 매우 컸어요. 주말에도 쉬지 않고 ‘통신’을 공부했죠. 통신 분야 전문가를 불러다 놓고, 다 같이 알아야 한다며 계열사 주요 임원들까지 불러 함께 공부했습니다. 저도 주말마다 같이 배웠는데, 제 나이대에 통신을 저만큼 아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였죠. 최태원 부장은 열정이 높은만큼 그만큼 이해도 빨랐습니다. 늙은 저도 그만큼 알았는데, 젊은 최태원은 저보다 얼마나 더 알고 있었겠어요”

 

최태원 회장의 또 하나의 특징은 주변에 지식인들을 가까이에 두었다는 점이다. 젊은 최태원에게 권위는 중요치 않았다. 언제든 자기보다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 배우려 노력했다.

 

유 전 사장 역시 최태원 회장과 1:1 독대 오찬을 자주 했다. “저한테도 자주 찾아와 밥을 같이 먹자고 했죠. 밥 먹는 자리에선 보통 계열사 사정에 대해 많이 물어봤어요. 당시 제가 경영기획실에 근무하며 계열사에 자문역할을 많이 했으니, 내부 사정을 저보다 많이 아는 사람이 없었죠. 그래서 최태원 회장은 수시로 저를 찾아 많은 것을 묻고 배워갔습니다.”

 

최태원 회장은 SK 대표이사로 오른 뒤에는, 벤처기업 사장, 전문 경영 컨설턴트를 자주 만났다고 했다.

 

최 회장은 당시 두각을 보이는 벤처 사장들은 대부분 만나봤는데, 대표적으로 직원 두 명으로 시작해 연 매출 2백억원대 직원수 160명의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시킨 조현정 비트컴퓨터 사장과 인터넷 쇼핑몰 옥션의 성공신화를 쓴 이금룡 전 대표 등이 있다.

 

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안철수연구소를 경영할 당시, 최 회장과 자주 미팅을 가진 인물 중 하나다.


최태원 회장은 배움에 있어서도 결코 혼자만 아는 법은 없었다. 항상 임원들에게 함께 배우길 권유했고, 벤처 사장들이나 경영 컨설턴트와의 미팅자리에도 임원들을 자주 동석시켰다.

 

회장직에 오른 뒤에도 임원진들에게 ‘벤처 사장들을 자주 만나 정보를 공유하며 성공 경험을 배우라’는 주문을 자주 내렸다. 벤처 기업의 혁신적인 마인드를 배워서 SK에 적용시킨다면 계속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본 것이다.

 

이는 '직원이 잘돼야 회사가 발전한다'는 아버지의 경영철학을 그대로 이어받은 측면이 크다.

 

최 전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내 회사를 위해 노력해달라”가 아닌, “우리 회사를 발전시켜 다같이 잘되자”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특히 ‘직원을 주인처럼’ 대했다. '의인물용 용인물의'(疑人勿用 用人勿疑 : 의심스러우면 기용하지 않지만 일단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않는다)는 경영철학도 유명하다.

 

▲ 최태원 SK그룹회장    ©브레이크뉴스

 

SK MS의 집대성

 

SK그룹의 기업문화는 고유의 경영철학이 담겨 있는 SKMS(SK Management System)로 대변될 수 있다.

 

SKMS는 SK에 입사한 누구나 받게 되는 교육으로, 승진 또는 특정 년차에 도달하면 정기적으로 SKMS를 교육받게 된다.

 

이 SKMS는 선대 회장 때부터 만들어 경영관련 철학을 집대성한 것으로, 최태원 회장에게도 많은 영향력을 끼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유 전 사장은 최종현 전 회장이 잭 웰치 당시 제너럴일렉트로닉(GE) 회장과 미팅을 가진 일화를 소개했는데, 최 전 회장이 잭 웰치에게 “GE에는 열정을 가진 직원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잭웰치는 “5%”라고 답했다고 한다.

최 전 회장은 결국 열정을 가진 직원을 늘리는 것이 회사 발전을 좌지우지 한다고 보고, ‘SKMS’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했다.

 

이에 따라 SKMS는 인간 위주의 경영, 구성원들의 열정을 올릴 수 있는 방법과 시스템 경영, 소위 부서간, 직원간 협력 체계를 강화시킬 수 있는 법, 그리고 최고수준의 목표를 달성시키기 위한 리더십 등이 담겼다.

 

SKMS는 사실상 SK그룹의 근간이기도 하다. 창업자인 최종건 전 회장부터 내려온 경영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최태원 회장의 철학 역시 SKMS에 녹아들어 있다고 유 전 사장은 말했다.

 

▲ 최태원 SK그룹회장   ©브레이크뉴스

 

“뚝심은 치밀한 사전 준비에서 나와”

 

SK그룹의 도시바 메모리 부문 인수와 관련 언론에서는 “최태원 회장의 뚝심이 먹혔다”, “최 회장의 자신감 있고 과감한 투자가 불리한 판세를 뒤집었다” 등의 평가가 이어졌다. 하지만 최 회장의 ‘뚝심’과 ‘과감한 추진력’은 치밀한 사전 준비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

 

유 전 사장은 마지막으로 최 회장을 이렇게 평가했다.

 

“최종현 전 회장과 그렇고 최태원 회장도 그렇고 M&A를 아주 잘 활용하는 사업가들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길면 10년, 짧게는 수년 전부터 준비하죠. 그러니 굵직굵직한 M&A를 성공시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뚝심있게,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게 최태원 회장의 리더십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사전 준비가 철저하게 됐기 때문에 가능한겁니다. 아마 큰 변화가 오지 않는 이상 SK그룹은 이 같은 방식을 통해 계속 발전해나갈 겁니다. 선대 회장이, 그리고 최태원 회장이 가잘 잘하는 방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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