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해지고 싶다면 세 가지를 끊으세요, 지금 당장!

각성의 밥: 각성에 대하여

이서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01/12 [09:35]

우리 몸의 유전자는 태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생명이 시작된 이래 과거의 모든 생명체가 진화하면서 남긴 유산이라는 것이다. 한 인간의 유전자 속에는 과거의 모든 기억들이 담겨 있다. 나는 그냥 일 개인으로서의 내가 아닌 우주적인 유기체로서의 한 존재이다. 말하자면 모든 것은 미세하게 세밀하게 그리고 정교하게 모두 연결되어 있다. 나와 네가 연결되어 있고 너와 그가 연결되어 있고 그와 그녀가 연결되어 있고 내가 먹은 돼지고기와 내가 연결되어 있으며 장 속에 사는 수백억 개의 셀 수도 없는 장내 미생물군과 연결되어 있다.

 

나는 내 눈앞을 재빠르게 지나가는 저 바퀴벌레와 연결되어 있고 온몸을 오그리고 몇 개의 실선으로 남은 거미의 주검과도 연결되어 있다. 나는 흘러가는 저 구름들과도 연결되어 있고 구름이 비가 되고 눈이 되어 내릴 때 느껴지는 온갖 과거의 추억과도 연결되어 있다.

 

나는 이미 죽어 흙이 되어버린 숱한 우리 조상들과 연결되어 있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나의 후손들과도 연결되어 있고 19세기에 살았던 니체와도 쇼펜하우어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는 하이데거를 만나 그와 이야기를 나누므로 그와도 연결되어 있고 먼 곳에 있지만 같은 시간, 다른 공간을 점하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연결된 사회, 초연결성의 시대가 제4차 산업혁명의 특징이라고 한다. 제4차 산업혁명은 초연결성의 사회이며 초지능화된 사회가 될 것이라고 학자들은 예견한다.

 

그러나 우리가 제3차 산업혁명이니 제4차 산업혁명이니 중얼거리기 훨씬 이전에 생명은 이미 연결의 고리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고도의 지능을 가지고 면면하게 이어져 내려와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이르렀다. 그러니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인간이 어딘가로 밀려날지 모른다고 전전긍긍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인간은 이미 초유기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능이 우리를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착각하지 마시길.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실은 만물을 지배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만물을 가장 지혜롭게 운용할 자격이 주어져 있으니 상생하라는 것이다. 허투루 행동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이른바 경거망동.

 

▲ 이서영     ©브레이크뉴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경거망동의 희생자인지 모른다. 그 첫번째 희생자는? 바로 나 자신. 결국 인간이라는 종족 자신.


몸이 삶의 얼마나 귀한 도구인지 안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음식이 지뢰밭이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이스크림, 사탕, 과자, 붉은 고기들, 우유, 물, 땅, 하늘, 돼지, 소, 닭... 도대체 오염되지 않은 곳이 어디 있는가? 100년 전만 해도 숨쉬고 살 만했던 곳들이 지금은 귀하게 만날 수 있는 희귀한 장소가 되고 말았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면서 21세기의 우리는 여전히 비와 태풍과 지진과 쓰나미 등을 조절하지 못한다. 우습게도 조절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기묘한 방향으로 틀어 새로운 위기 국면에 처한 것이 바로 인간들이다. 음식에 화학물질들을 주입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인간들은 온갖 다양한 질병들을 얻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질병들이 창궐한다. 암이라는 이름의 신종 질병들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러나 이제는 감기처럼 흔한 것이기도 하다.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는 암이라고 하면 끔찍히 싫어하면서 왜 그 원인에 대해서는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 걸까? 샤론 모알렘은 생명체의 얼키고설킨 상관관계에 대하여 '반드시'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그것도 자주 먹어야 한다. 먹는 이유는 살기 위해서다. 살기 위해서 먹는데 사실은 죽기 위해 먹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먹어서는 안 될 음식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기 때무이다. 돈돈돈. 모든 것이 실용주의적 관점에 의하여 판단되고 재단되고 생산되고 소비된다. 천민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된다.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은 무용지물이며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돈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음식에 장난을 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삶은 부메랑이라 언젠가는 그것에 대한 대가를 자기 스스로 받을 테지만 그는 그렇다 쳐도 이유 없이, 아무런 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거나 질병에 걸리게 만든다. 몸은 각성하지 않으면 건강하게 유지할 수 없다. 몸이 건강하지 않는데 마음이 늘 행복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리 없다. 깨달아야 할 시간이다. 내가 지금 입에 넣으려고 하는 음식들에 대하여.


모임에 갈 때가 가끔 있다. 가족들로 보이는 이들이 눈에 띈다. 그들은 아름다운 옷,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마도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풍족한 가족 같다. 부모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자녀인 듯한 두 아이와 마주보고 앉아 식사를 한다. 그들의 얼굴에는 사랑스러움과 뿌듯한 감정이 행복으로 빛나고 있다. 그들은 바라보는 아이들을 자랑스러워 하는 것 같다. 그들은 지금 식사 중이다. 그들의 식탁에는 음료수가 가득 든 피처가 있다. 그들이 먹는 음식은 유기농음식이 아니다. 수십 년 전이야 유기농이냐 아니냐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소박한 삶이 가능한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 앉아 있는 곳은 패밀리 레스토랑이다. 이곳은 피자와 파스타, 그리고 스테이크 등이 제공되는 곳이다. 매우 고급한 인테리어로 보아 음식 가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은 당연히 마련되어 있다.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무엇이든 주고 싶어한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파스타를 먹이고 피자를 먹인다. 그리고 피처에 든 음료수는 점점 줄어든다. 이들이 맛있게 먹은 그 음식은 그들의 행복과 사랑만큼 건강하고 풍요로운 음식이었을까?


흰밀가루로 만든 음식은 대개 쓰레기음식이다. 건물이 아무리 화려하고 인테리어가 아무리 아름답고 서빙하는 그녀와 그들이 아무리 멋져도, 주방에서 요리사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레스토랑의 주인이 아무리 교양 있고 고상하고 우아하다고 해도 그 음식들은 쓰레기음식이다. 흰밀가루는 표백제, 방부제 덩어리이다. 육안으로 보기에 화려하고 먹음직스럽고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해도 그것은 자연에서 나는 진짜 꽃이 아니라 인공의 꽃일 뿐이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인공의 꽃을 먹고 배가 아프지 않고 머리가 아프지 않은 게 자연스러울까? 꽃처럼 만든 꽃 아닌 꽃. 음식처럼 만든 음식 아닌 음식.

 

그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사랑'으로 먹인 콜라나 사이다 등의 음료수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그 음식들이 아이들의 위와 장 속으로 들어가 어떤 작용을 할 것인지 한 번 더, 두 번 더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결국 부모의 사랑으로 자녀들에게 독약을 듬뿍 먹이고 있는 것과 다름 없음을 깨닫기란 요원하다.

 
필자 역시 부끄러운 과거를 갖고 있다. 어렸을때 동네에 코카콜라 본점이 있었다. 거대한 코카콜라 공장은 환상적이었다. 그 까만 액체는 무척 매혹적이었다. 필자는 곧 그 맛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대학 때 학교 앞에서 시음회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필자는 코카콜라, 해태콜라, 8ㆍ15콜라, 펩시콜라를 눈을 가리고 맛만으로 정확히 구별할 수 있었다. 콜라를 너무 좋아해서 1.5리터를 원샷한 적도 있고 콜라에 밥을 말아 먹은 적도 있다. 호주로 배낭여행을 갔을 때는 색깔별로 다른 콜라병을 보고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태어났다. 필자는 아이가 5살이 될 때까지 콜라를 그대로 마시게 했을 뿐더러 '말을 듣지 않으면 콜라를 안 줄 거야'라고 협박을 한 적도 있었다. 그만큼 어린 다섯 살 아이에게 콜라는 가장 맛있는 음료였던 것이다. 하지만 어린 아들이 콜라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인지하도록 유도한 사람은 무지하고 철없는 엄마였던 것이다.

 
필자는 15년 전에는 늘 몸무게가 43킬로 정도였다. 당시는 콜라를 입에 달고 살았고 붉은 고기를 무척 좋아하였던 때였다. 한 의사 선생님이 필자에게 말했다.

 

"건강해지고 싶어요? 건강해지고 싶다면 세 가지를 끊으세요. 지금 당장."

 

그가 끊으라고 요구한 3가지는 콜라와 육고기와 커피였다. 43킬로에 162센티미터. 저녁 6시쯤 되면 하루의 배터리를 다 써서 현기증에 시달렸다. 저녁이 되면 의욕이 생기지 않아 하고 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해쳐나갈 수없었다. 감기에 걸리거나 몸살이 나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필자를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에 힘을 내려면 잘 먹어야 한다며 고기를 잔뜩 사주었다. 그러면 맛있게 먹었고 그러나 여전히 아프거나 병약한 건강은 회복되지 못했다. 그러니 건강하게 살려면 이런저런 것들을 '끊으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들을 수밖에.

 
이후 필자의 삶은 성형 전과 후처럼 삶의 질이 달라졌다. 물론 그 과정에 하지 않던 운동도 꾸준히 하고 스트레스 요인을 줄이고 독서에 심취하는 등 다양한 것들이 삶에 개입되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사건은 음식을 '더 먹는 것'이 아니라 '먹지 않는 것'이었다. 이 깨어남의 순간 이후로 몸무게는 49킬로그램 가량으로 늘었고 삶의 질 또한 향상되었다. 지금은 365일 아침 5시면 눈을 떠 하루를 부지런히 걷다가 자정이면 잠이 든다. 충분히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먹거리에 대한 각성은 100세 시대의 나를 향후 건강한 미래로 이끄는 첫걸음이 되어줄 것이다. 끊어라. 끊을 수 없다면 줄여라. ebluenote@hanmail.net


*필자/이서영. 북카페<책읽어주는여자 블루노트> 주인장.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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