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고위급회담에서 '경평축구' 부활을 논의한다면?

경평축구 1946년 중단 72년째 표류…스포츠 외교차원 부활했으면...

문일석 발행인 | 기사입력 2018/01/13 [13:17]

▲ 남북회담 양측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월9일 오후 판문점 남측 지역인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의 종결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는 장면.   ©사진공동취재단

 

국제사회가 단절됐던 외교의 문을 열 때, 스포츠 외교를 벌인다. 1979년 미중수교 직전의 핑퐁외교가 대표적인 스포츠외교의 하나이다. 스포츠가 닫혀있던 외교의 문을 여는데 큰 역할을 한 것. 1979년 1월1인 미-중이 수교를 했다. 이 과정에서 미중 탁구대회(핑퐁)가 큰 공을 세웠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과 중국의 마오쩌둥은 상호 두 국가의 관계개선을 원했다. 그 무렵, 일본 나고야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에 참석했던 중국 대표 팀은 미국 대표 팀을 중국에 초청한 미중 탁구대회를 원했다. 중국 탁구팀의 초청을 받은 미국탁구 대표팀은 1971년 4월 중국 베이징에서 미중 탁구대회를 가졌다. 그 이후, 교역하기-기자방문-정치가 방문 등의 과정을 거쳤다. 미중이 수교과정에서 탁구라는 스포츠가 큰 역할을 한 것. 이를 가리켜 '핑퐁외교'라 한다.

 

필자는 지난 1990년, 토요신문 기자로 일할 때 일본을 방문, 동경에 있는 조총련 조선대학을 무턱대고 찾아갔다. 허가 없이 조선대학을 방문했다며 경찰이 조사차 필자의 집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그만큼 예민한 시기였다. 조선대학을 간 이유는 취재를 위해서 였다. 조선대 총장을 인터뷰를 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당시 조선대학 총장은 평양에 가고 부재중이었다. 학교 당국에 찾아온 이유를 말했더니 “남조선 기자가 찾아온 건 유례없는 일”이라면서 부총장을 만나게 해주었다. 그래서 직접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이때 조선대학 부총장은 “경평축구 부활”을 거론했다. 남북한이 축구를 통해 가까워질 수 있다고 했다. 분단된 남북은 스포츠를 통해 가까워 질수 있다는 취지였다.

 

원래 서울-평양은 남북한의 대표적 도시이다. 일제하 이 두 도시 간 스포츠 교류 행사가 있었다. '경평축구'가 그것이다.

 

이에 대해 정보시사상식 사전(시사상식사전, 박문각)은 “경평(京平)축구대회는 1929년부터 조선일보사의 주최로 경성(京城-서울의 옛이름)축구단과 평양(平壤)축구단이 서로 장소를 바꾸어 가며 가졌던 친선경기이다. 총 7회에 걸쳐 20차례의 경기를 가졌는데 경성축구단은 5승 8무 7패, 평양축구단은 7승 8무 5패로 종합전적은 평양군이 약간 우세였다.”고 기록하고 있고 “1929년 10월 8일 당시 경성중학이 주축이 된 경성군(당시에는 팀을 군(軍)이라 부름)과 숭실학교가 주축이 된 평양군이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경기를 가진 데서 유래되어 매년 한 차례씩 서울과 평양을 오가면서 경기를 치렀다. 이 대회는 당시 우리나라의 대표적 두 도시 간 대항전이라는 점에서 전 국민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일제치하에서 민족의 단합과 반일정신을 키우는 데 기여했다. 첫 대회는 '전경성군 대 전평양군 축구 대항전'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3차전으로 진행되었다. 7,000여 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으며 1 대 1, 4 대 3, 4 대 2로 평양군이 2승 1무를 거두어 승리하였다”고 전한다.

 

이어 “1930년 경성운동장(지금의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제2회 대회에서는 3 대 2, 5 대 3, 5 대 1로 경성군이 2승1패를 거두어 승리하였다. 그러나 2차 회를 치른 뒤 대규모 군중집회를 금지시킨 일제의 압력과 주최했던 조선일보의 사정으로 1931년과 1932년 대회가 열리지 못하였다”면서 “이후 조선축구협회의 주선으로 열린 경평군, 평양군 대표자 모임에서 1933년 경성축구단과 평양축구팀이 창단을 기념하며 경기를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대회는 봄, 가을로 나눠 경성과 평양을 오가며 치르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이 결과 1933년 4월 6일 평양공설운동장에서 제3회 경평축구대회가 열렸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경평축구는 1946년에 중단됐다. 1945년 해방 이후 남한은 미국에 의해, 북한은 러시아에 의한 신탁통치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정보시사상식 사전은 경평축구의 중단 이유에 대해 “그 뒤 평양공설운동장에서 제4회, 배재운동장에서 제5회 경기가 열렸고, 1935년 4월 서울 경성운동장에서 제6회 대회가 열렸다. 그런데 제6회 대회에서 심판 판정시비가 지역감정으로 비화되면서 양측 응원단 간 충돌로 경기가 또다시 중단되었다. 이후 1946년 자유신문사 주최로 서울운동장에서 제7회 대회가 재개되었으나 38선으로 남북통행이 제한되어 제7회를 마지막으로 또다시 중단되었다”고 기술 했다.

 

경평축구는 1946년에 중단됐으니 올해로 72년째 개최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원래의 경평축구 취지를 살려 '남북통일축구대회'가 1990년-2002년에 열리긴 했으나,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런 행사는 더 이상 진행되진 못했다.

 

2018년 평창동계 올림픽(2018 Winter Olympics )은 2월 9일부터 2월 25일까지 강원도 평창에서 개최된다. 지난 1월9일 열린 남북고위급 판문점 회담에서 북한팀의 평창동계올림픽 참석이 결정됐다. 그러나 평창동계올림픽은 일시적인 국제 스포츠 행사. 이 행사가 끝나더라도 남북이 스포츠를 통해 가까워질 수 있었으면 한다.

 

남북한이 민간교류 차원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스포츠 가운데 그 역사성이 있는 경평축구의 부활을 거론해본다. 서울시는 지난 2015년 서울시 남북교류협력 사업계획을 수립하면서 경평축구 부활을 위한 예산(18억)을 편성한 바 있다. 그러나 2010년 천안함 사건이 백령도해상에서 발생한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그해 남북관계 단절을 선언한 5·24 조치를 발표했다. 서울시가 예산까지 편성하면서까지 진행하고자 했던 경평축구는 남북단절 정책 때문에 제자리걸음을 해야만 했다.

 

경평축구의 부활이 이뤄졌으면 한다. 이후 남북 간은 고위급 회담을 또 열 것. 이때 경평축구 부활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으면 한다. 정부가 주도하는 게 아니라, 민간 차원의 남북축구 즉 '경평축구(서울-평양)'가 부활한다면 남북관계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상호 왕래하면서 축구경기를 벌이고, 이를 방송사가 생중계 한다면, 분단으로 떨어져 있었던 긴 세월 속의 이질감을 허무는데 기여할 것이다. 단일민족-통일정신을 일깨우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moonilsuk@naver.com

 

*필자/문일석. 시인.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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