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5.18 '잔악한 진압' 세계로 수출 “악몽재현 막아야”

지만원씨 “광주 5.18 때 북한군 600명 진입” 주장…5.18 광주사건 원인규명-책임기간 무한대여야...

문일석 발행인 | 기사입력 2019/02/10 [20:28]

1979년 10.26 사건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됐다. 부마항쟁 와중에 박정희는 김재규 당시 중앙정부장이 쏜 권총 실탄에 의해 삶이 마감됐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박정희 시신을 향해 '확인사살'까지 했다. 그 후 신군부는 정치혼란의 와중에 12.12 군사쿠데타를 감행, 권력을 찬탈했다. 이 사건 직후 전남 광주에선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 민주주의 국가를 달라는 시위가 발생했다.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빼앗은 신군부 세력의 집권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학생+민간인 합세의 시위가 광주에서 발생한 것.

 

▲ 1980년 5.18 광주항쟁 때의 희생자.  ©브레이크뉴스 자료사진

▲1980년 광주항쟁 때의 무자비한 진압. ©브레이크뉴스 자료사진

 

군사계엄령 하에서 민간 시위에 대한 진압작전이 벌어졌고, 계엄군의 발포로 193명(민간인 116명-군인 23명-경찰 4명)이 사망했다. 진압작전이 끝난 직후의 희생자 수이다. 희생자 수는 훨씬 많을 것. 집계되지 않은 실종자까지 합하면 1천 명이 넘을 것이라는 말들이 나돌았고, 지금도 사망자 암매장 발굴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이다.

 

지난 1980년에 일어났던 광주 5.18시위진압 사건은 39년이란 연륜이 흘렀지만 아직도 진행행인듯 하다.

 

지난 2월8일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 의원이 주선한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가 아물어 가는 광주사건의 상처를 도지게 만들었다.

 

이 공청회에서 지만원 박사는 북한군의 광주개입설을 또다시 주장했다. 그는 "5.18 때 북한군 600명이 투입됐다"고 주장 한 것. 이 사건을 가장 잘 알고 있을 미국은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군이 광주에 투입되지 않았다는 것을 천명한 바 있다. 그럼에도 자유한국당이 주선한 공청회에서 ”600명의 북한군 투입“이 되풀이 주장되자 민주평화당-민중당 등에서는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평화당 최경환 의원은 지난 8일 낸 논평에서 지만원씨의 주장을 접하고 ”황당-경악스럽다“고 평했다. 민중당 이은혜 대변인은 “자유한국당은 지만원씨의 역사왜곡 주장이 당론인지 밝혀야 한다”고 요구하고 “자유한국당이 지만원씨와 장단 맞춰 경거망동 입을 놀린다면 자유한국당은 역사의 무대에서 퇴출 뿐”이라고 지적했다.

 

광주 5.18사건은 이미 신군부의 권력장악을 위한 쿠데타군의 폭력진압 사건이었음이 밝혀졌다. 이 사건은 국제적인 사건이다. 전 세계가 이 사건을 지켜봐 왔다. 광주 5.18사건은 군사 쿠데타 세력의 집권용 잔악한 진압사건으로 결론이 난 가운데, 이 사건은 한국에서 끝나지 않고 세계로 수출되는 오명의 사건으로 진행형이다.

 

▲미얀마 88항쟁의 현장. 한국 5.18사건을 모델로 적용, 잔인한 진압작전이 이뤄졌다. 이 사건으로 무고한 시민 1만여명(정부측은 3000이명이 사망했다고 발표)이 살해됐다.     ©브레이크뉴스

▲ 미얀마 88사건     ©브레이크뉴스

▲미얀마 88항쟁의 현장.    ©브레이크뉴스

▲미얀마 88항쟁의 현장.  ©브레이크뉴스

▲미얀마 88항쟁의 현장.     ©브레이크뉴스

 

▲ 미얀마 88사건. 승려의 싸늘한 주검.    ©브레이크뉴스

 

지난 1월9일. 필자는 미얀마 양곤에 있는 88항쟁 기념관을 방문했었다. 총칼로 집권한 미얀마 군부가 잔인하게 학생-민간인 시위를 진압하는 사건, 소위 ‘1988년 8월8일’ 사건의 자료를 모아놓은 곳. 미얀마 8.8항쟁은 광주 5.18 사건과 동일한 행태의 학생+민간인이 시위였다. 군부의 시위진압군이 쏜 총탄에 의해 공식적으로 1만여명(정부측 발표는 3.000명 사망)에 달하는 순진무구한 미얀마 학생-시민이 희생됐다. 그해 3월16일 군부는 시위하는 양곤 기술대학 학생들을 향해 발포했고, 이 발포로 어린 학생들 100여명 정도가 사망했다. 정부의 사망자 축소가 탄로나자 승려도 시위에 가담, 시위가 커졌다. 결국 이 사건으로 1만여명이 희생됐다.

 

미얀마 88항쟁 전개과정은 한마디로 광주 5.18진압 행태가 그 모델이었다. 한국 12.12 군사쿠데타 세력은 광주사건에서 무자비한 진압작전으로 권력을 빼앗아 집권했다. 미얀마 군부는 한국의 광주사건 진압사건을 모델로 88항쟁을 마무리 했다.

 

미얀마 군부는 자비를 종지로 삼아온 전통 불교국가인데도 무자비한 학살을 거쳐 권력을 거머쥐었다. 이후, 국제사회에 그 어떤 폭악한 군사진압사건이 나타날지 모른다. 그 시작은 1980년 광주 5.18사건이다. 광주 5.18 사건은 국민이 부여한 국방용 총칼로 국민을 난도질한 사건이었다.

 

올해는 5.18 사건이 일어난 지 39년째 되는 해. 이 진압 사건의 핵심책임자였던 전두환-노태우 등이 엄연하게 생존하고 있다. 그런데 악랄한 진압 당사자를 북한군에 떠넘기려하는 자유한국당과 지만원씨는 자신의 행위가 어떠한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뒤돌아봐야 한다.

 

지만원씨의 “5.18 북한군 600명 광주시위 진입주장에 대해서는 검찰의 빠른 수사가 진행돼야 한다. 만약 총기무장한 북한군 600명이 5.18 광주사건 때 진입했다면, 계엄군과 합세해서 광주시민을 학살했다는 주장인가. 아니면, 시민군 편에 서서 계엄군-경찰을 향해 저격 작전을 벌였다는 의미인가. 진실을 밝혀내, 국가의 체신을 세워야 한다.

 

북한군 진입이 진실이란다면, 당시 전두환-노태우 신군부 수뇌부에 책임이 있다. 신군부가 북한군의 진입을 허락 했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게 사실이란다면, 전두환-노태우는 사형감이다. 그게 아니라면, 거짓-허황된 주장을 해온 지만원씨가 이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져야만 할 것이다. 5.18 광주사건의 원인규명-책임기간은 무한대여야 한다.

 

이 사건이 국제사회의 또 다른 악랄한 진압사건의 모델적 사건으로 존속하는 한 국제사회의 미래는 어두울 것이다. 국제사회에, 아직도  미개한 쿠데타 세력들에게 진압 모델사건으로 비쳐져온 5.18광주사건은 끝까지 진상규명과 책임이 이뤄져  다시는 인류역사에서 그러한 비극적 사건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moonilsuk@naver.com

 

*필자/문일석. 시인.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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