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절대적 존재감’으로 자리잡은 슈퍼코리안 최영석 태권도 감독

태국 태권도 국가대표팀 지도자 최영석 감독...성공스토리[2]

손경찬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9/04/19 [01:01]

태국의 히딩크’, ‘태국의 영웅’, ‘슈퍼 코리안이 같은 지칭은 태국 태권도의 붐을 가져온 장본인, 최영석 태국 태권도 국가대표팀 감독을 두고 태국 국민들이 하는 말이다. 2002년 최 감독이 태국으로 건너가 무에타이의 나라태국을 태권도의 나라로 변신시킨 것은 한마디로 그의 빛나는 한국혼과 열정이었다.

 

그가 태국에서 걸어온 빛나는 자취를 보면서 필자는 위대한 변화는 개개인의 생각과 행동 속에서 일어난다는 아일랜드의 리드싱어 밥 겔도프가 한 말을 곱새겨본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태권도를 베워 그 이후 태권도맨으로 살았던 그가 태권도의 불모지 태국으로 건너가 직장을 얻은 고작 8개월간 임시 계약직인 태권도 국가대표팀 코치직을 기회 삼아 엄청나게 변화했다. 자신의 정열을 다 바친 결과 17년째 태국 태권도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하고 있으면서 태국을 태권도의 나라로 변화시켰으니 정말 위대한 변화라 아니할 수 없다.

 

 

▲ 최영석     ©브레이크뉴스

 

문화예술인이든, 체육인이든 또는 어느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간에 크게 성공한 자의 이면에는 더할 나위없는 고난의 극복사가 숨겨져 있다. 성공이 그저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지금 태국에서 국민 영웅대접을 받고 있는 최 감독도 마찬가지다.

 

성장하기 전까지 어린 시절에는 혹독한 시련기와 어려움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찢어지는 가난을 맛보았다. 그러기에 학업수단으로 6년간 장학금을 받고 태권도 명문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고 대학도 태권도 조교 등 아르바이트로 다녔으니 그에게서 태권도는 생업의 수단이자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러했던 최 감독의 학창 시절이나 선수시절은 주목받지 못했다. 태권도 선수로 뛰긴 했으나 그가 그토록 원했던 국가대표팀으로 발탁되지 않았으니 뛰어난 기량에 비해 선수운은 따르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공부 재주로 있던 그가 학구열도 대단해 대학을 졸업한 뒤에 강원대학교에서 체육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동아대학교에서 국제태권도학 박사학위를 받은 자체는 그가 태권도에 얼마만큼 진지하게 접근했는지를 알 수가 있다.

 

 

▲ 최영석     ©브레이크뉴스

 

태국에서의 코치 생활 8개월간은 그에게서 지도자로서 능력을 보여준 시기였다. 처음 코치직을 맡고 대표선수를 선발하는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태권도와 태국 전통 무술 무에타이는 무술을 사용하는 데 있어 비슷해 보이긴 하나 시합 룰이 달라 별개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태국 태권도협회에서는 무에타이 선수로 대표팀을 구성하다보니 처음부터 엉성했다.

 

최 감독의 간곡한 요청으로 새로 구성한 대표팀 선수들에게 최선을 다해 지도를 해나갔다. 태권도의 기술보다 정신과 예의를 중시하면서 지도 연마에 많은 땀을 흘렀고, 그 성과가 5개월 뒤 20029월에 열린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성과를 이뤄냈으니 태국 여자 선수가 두 개의 은메달을 땄던 것이다.

 

그 성과가 태국 정부와 태권도협회에 크게 부각돼 최 감독은 정식적으로 감독이 됐고 아테네 올림픽까지 계약기간이 연장 된 것이다. 2004년 열린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최감독이 이끄는 태국 태권도 대표팀은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다. -49kg급에서 여자선수 와오와파가 동메달을 땄던 것이다.

 

 

 

태국이 1952년부터 올림픽에 참가하고 있지만 그때까지 태국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종목은 복싱과 역도 두 종목뿐이었는데 태권도가 올림픽에서 메달권에 진입했으니 태국에서는 태권도 붐이 급속도로 신장하면서 최영석 감독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2002년 태국의 태권도 인구가 2만명에 불과했지만 2년후에는 50만명으로 크게 늘어났는데 이는 아테네 태권도 동메달의 영향이 컸던 것이다. 현재 태권도 인구가 100만여명에 이르는 것도 최 감독의 공로다.

 

그 이후에도 태국 태권도 국가대표팀은 이후 승승장구했다. 각종 세계대회에서 100여 차례 입상했는가하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후 2008, 2012년과 2016년 올림픽에서도 내리 4회 연속적으로 태권도 종목에서 메달을 땄으니 태국에서 태권도 열풍은 대단했다. 최 감독의 지도역량으로 2002년 태권도 국제순위 150위권 국가에서 현재는 4위권에 이르는 태권도 최강국가로 변신했으니 이 모든 것이 슈퍼 코리안 최영석 감독의 공으로 돌리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최 감독에게 고난이 없었던 건 아니다. 훈련시간에 엄격했던 그는 ‘타이거 최’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새벽운동에 지각한 선수를 그대로 돌려보내는 등 훈련에서 엄격하며 자신에게도 더 지독한 잣대를 내밀었던 지도자였던바, 2014년에는 올림픽을 대비해 훈련받던 여자대표 선수 하나가 최 감독에게 구타를 당했다고 주장한 사건이 벌어졌다, 하지만 태국 국민들은 최 감독을 믿고 끝까지 그를 지지하면서 그 일이 잘 무마됐는데 그로 인해 최 감독은 더 열성과 애정을 갖고 대표팀을 자상하게 지도하는 계기로 삼게 됐다는 것이다.

 

2014년 올림픽 개막 직전 최영석 감독은 ‘제 이름은 최영석입니다. 블랙벨트의 꿈’이란 제목으로 태국어 자서전을 내 그의 성장과정과 그가 태국에서 이룬 태권도의 성취 과정 등을 담았다. 그 자서전 발간으로 얻은 수익을 고스란히 태국 고아원과 불우아동을 위해 사용했으니 이 소식을 접한 태국 국민들이 최 감독을 ‘국민 영웅’시하는 것도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최 감독이 2002년 임시 코치직으로 태국에 와서 17년이란 오랜 시간동안 많은 시련과 힘든 상황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난관들을 다 극복하고서 한국의 태권도를 태국에 뿌리내리고 열매 맺게 했으니 슈퍼 코리안 최영석의 태권도 정신은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그에게는 마지막 어려운 난제가 걸려 있다. 태국에서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그의 국적 변경 문제다. 태국 언론에서는 오래전부터 최 감독이 ‘태국 국적을 취득해 태국인이 된다’는 보도가 흘러 나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현지언론들은 최영석 감독이 한국국적을 포기하고 태국국적을 취득하는 것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는 분위기다.

 

지난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태국 태권도가 역대 최고인 은메달과 동메달을 동시에 따는 쾌거를 이루자 국민들은 쁘라윳 총리에게 까지 태국국적을 부여해야 한다고 여론이 빗발쳤다. 최 감독이 17년간 태국 태권도 국가대표 감독직을 맡으면서 태국 스포츠계에 공헌한 공로가 매우 컸고, 최 감독이 태국에 대한 애정이 매우 커다는 점에서다.

 

사실 외국인에 불과한 슈퍼 코리안, 최영석 감독이 태국과 태권도 협회 등에 엄청난 기여를 했지만 협의의 간부나 임원 등이 되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한 점도 현지 언론이 최 감독의 국적 변경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태국국적 취득과 관련된 태국 언론들의 ‘일방적’ 보도에도 불구하고 최영석 감독은 공식적 입장은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최 감독의 한국사랑은 유별나다.

 

▲ 손경찬     ©브레이크뉴스

필자가 외국에서 만난 많은 교포들이나 한국인들이 조국에 대한 사랑이 넘치지만 최 감독이 태국 국가대표팀을 지도하는 훈련장에서 착복하는 도복에서 최 감독의 한국사랑을 알 수가 있다. 그의 도복 앞가슴자리에는 태국기가 부착돼 있다. 최 감독은 그 태극기를 보면서 한국인으로서 긍지를 느낀다고 할 정도였으니 모르긴 하되 국적 변경 문제도 잘 해결될 것 같다.

 

태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일시 귀국한 동생 태호로부터 태국 태권도 국가대표팀 최영석 감독을 소개받고 또 이야기 들으면서 필자 내심으로는 그렇게까지 유명하겠냐? 의문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현지 정보 등을 보고난 뒤 최 감독의 자초지종을 모두 알게 됐다. 최 감독이 1974년생이니까 이제 45세 나이에 태국에서 타 국민의 추앙을 한 몸에 받으면서 대한민국을 선양시키고 있는 슈퍼 코리안! 설마 히딩크나 박항서 감독에 비견하겠냐 의문을 품었던 자신의 부끄러워지는 까닭은 태국에서 ‘절대적 존재감’으로 자리잡은 한국인의 혼을 봤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한국을 빛내는 문화예술인이나 스포츠맨 등 한국인들이 많다. 그 가운데 우연히 듣고 소개받아 잘 알게 된 최영석 감독의 성공 스토리는 만인에게 인정받고 존경의 대상이 돼야할 충분한 사유가 있으니, 우리 한국에서도 그의 위업과 영웅성이 널리 전파되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2회 연재 끝) yejuson@hanmail.net

 

*필자/손경찬. 칼럼니스트, 시인. 수필가. 대구예총 정책기획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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