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서초구 '피천득 산책로'를 걸으면서...

”두려워 말라 그 또한 다 지나가리라“(It shall come to pass away)는 솔로몬의 지혜

이영일 전 3선의원 | 기사입력 2020/07/09 [10:01]

▲ 이영일 전 3선의원.  ©브레이크뉴스

서울 서초구의 반포천을 낀 오솔길을 피천득 산책로라고 한다. 멋진 서정시인이며 좋은 영어 선생이셨던 피천득 선생을 기리는 뜻에서 서초문화재단과 금아 피천득 선생기념사업회가 그분 탄생 110주년(1910~2007)을 기념,  이곳을 피천득 산책로라고 명명하고 조그마한 좌상(坐像)을 만들고 몇 편의 시비를 세워 놓았다.

 

나와 별 인연이 없던 이 길이 나와 갑자기 가까워졌다.  Corona19에 감염되지 않으려면 노인들은 바깥나들이를 자제하라는 주위의 강한 권고로 어언 6개월째 집 밖 출입을 줄이다 보니 마스크 쓴 채 집 근처를 산책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되었다.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반포천의 숲길을 나는 매일 아침이나 저녁 시간에 혼자 또는 아내와 함께 한 시간가량 거닐게 되었다.

 

반년 가까이 산책을 하다 보니 혼자 걸을 때는 여러 가지 잡상(雜想)들이 머리를 스치기도 하지만 때로는 주제넘게 임마누엘 칸트를 연상해보기도 한다. 지금은 러시아의 일부가 된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그를 매일 한 시간씩 평생을 산책하면서 그 유명한 3대 비판서를 펴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오솔길의 중간쯤에서 피천득 선생의 좌상을 지날 때면 으레 그 분의 멋진 시 ‘오월’의 한 소절이 떠오른다. ”내 나이를 세서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무는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는 대목들이 썩 마음에 와닿는다. 이 싯귀들을 노래처럼 읊으면서 혼자 살맛을 느낀다.

 

아침 이른 시간이면 많은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복장을 하고 자못 비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부지런히 걷고 있다. 팔자걸음을 하는 여인의 모습은 안 본 것만 못하지만 팔 모양을 씩씩하게 앞으로 흔들면서 의전병처럼 열심히 걷는 아낙들이 의외로 많다. 모두 건강용 행보다.

 

애완견과 함께 산책 나온 남녀들이 너무 많은데 나는 놀란다. 아프리카에서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데 드는 비용보다 훨씬 더 많은 경비가 드는 애완견을 기르는 분들의 취미를 나는 존중한다고 말한다. 내심은 다르지만 말이다. 

 

▲ 피천득 동상.  ©브레이크뉴스

▲ 피천득 산책로.     ©브레이크뉴스

▲ 피천득 탄생 100주년.     ©브레이크뉴스

 

애완견은 가끔 나에게 엉뚱한 망상을 심어준다. 코로나 역병으로 일자리를 잃거나 4차산업혁명으로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거나 나이 들어 생계가 어려워진 노인들이 자칫 공유재산을 균분한다는 명분으로 모두에게 똑같이 나누어준다는 기본소득이나 재난 지원금으로 일하지 않고 생계를 꾸려가는 신세가 된다면 인간들도 공동체가 관리하는 애완견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한순간 나를 움츠리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쓸데없는 망상은 나의 낙천적 성격 탓인지 곧 사라진다. 나는 또다시 산책을 계속하면서   태양이 닿지 않는 곳까지도 여권 없이 여행하는 시인처럼 환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역질(疫疾)이 없던 때를 회상해본다. 그러나 역질이 없어지는 것보다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더 커지면서 불안한 생각이 머리속을 채운다.

 

그러나 천변에 갓 피어오르는 코스모스는 나에게 바이러스를 두려워 않는 자기를 보고 배우라는 신호를 보내지않는가. 활짝 웃으면서 ”두려워 말라 그 또한 다 지나가리라“(It shall come to pass away)는 솔로몬의 지혜의 말을 일깨운다. 이래서 나는 피천득의 산책로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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