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딸 실종 10년…아내 농약 마시고 자살”

[기획취재]실종자 가족들의 애환(2)‥17세 송혜희 실종 그 후 10년

임민희 기자 | 기사입력 2009/03/06 [14:41]
4~5년 동안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우고 술로 슬픔을 달래며 전국을 찾아 헤맸다. 심장판막증과 관절염을 앓던 아내는 병으로 인한 고통과 딸을 잃은 슬픔 달래기 위해 매일 술을 마셨고 알코올중독과 우울증 겪다 결국 농약을 먹고 자살했다.
 
방송출연 후 다방, 술집, 사창가 등을 거론하며 딸을 찾고 싶으면 돈을 가져오라는 전화 수도 없이 받았다. 실종자가족들의 아픔을 더는 농락하지 말라.
 
「사람을 찾습니다……1999년 2월13일 오후 5시30분 평택 도일동 하리부락 자택에서 친구를 만나러 나간 후 친구와 헤어지고 송탄시 서정리에서 마지막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중 도일동 하리입구에서 밤 10시 10분경 하차 후 행방불명됨.」

10년 전 한 여고생이 늦은 밤 귀가 도중 실종됐다. 만 17세로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었던 송혜희(예명 은희)양은 그날 이후 지금까지 생사여부가 불투명하다. 당시 혜희 양과 같이 하차했던 30대 초반의 술 취한 남성이 최후목격자지만 그의 행적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둘째 딸을 찾기 위해 10년 동안 트럭을 몰고 전국을 돌아다닌 실종자 아버지 송길용(57)씨는 “죽기 전에 딸애 얼굴이라도 한번 보는 게 소원이다”며 딸이 살아있을 거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본지는 송혜희 실종사건을 재조명하고 실종자 가족들이 겪어야했던 고통과 아픔을 담아봤다.  
 
“딸을 찾아 전국을 해맨지 10년, 아직도 딸의 생사조차 알 수 없어 답답하고 속상하다. 심장판막증과 관절염을 앓던 아내는 딸이 실종된 후 우울증을 겪다 5년 전 농약을 먹고 세상을 떠났다. 생계가 뒷전이다 보니 5000만원이 넘는 카드빚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됐다. 공사판에서 일한 돈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지만 내 숨이 붙어있는 날까지 딸을 찾는 일은 그만둘 수 없다.” 
 
딸을 찾기 위해 10년 동안 트럭을 몰고 전국을 돌아다닌 실종자 아버지 송길용(57)씨는 “죽기 전에 딸애 얼굴이라도 한번 보는 게 소원이다”며 딸이 살아있을 거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 브레이크뉴스

 
송혜희 실종사건 10년
 
지난 2일 송혜희양의 아버지 송길용씨를 만났다. 그간 맘고생을 말해주듯 그의 얼굴엔 깊은 주름과 시름으로 가득했다. 그는 경기도 평택시 소재의 한 대학에서 임시로 청소 일을 하고 있다. 3달  동안 월 100만원 남짓의 돈을 받았지만 이마져도 계약기간이 끝나 다음 주면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한다.
 


1999년 딸 실종 후 트럭 몰고 전국으로 찾아 다녀
5000만원 넘는 사채.카드빚으로 신용불량자 신세
 
결정적 제보나 흔적 찾을 수 없어 수사 오리무중
당시 같이 하차했던 30대 초반 남성 찾는 게 급선무


 
 
송씨는 생계는 뒤로 한 채 딸을 찾는 일에 매달리면서 사채와 카드빚 등 5000만원의 부채를 지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는 신용회복위원회에 구제를 신청, ‘8년 동안 월30만원씩 갚으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일정한 직업이 없는 그로서는 이를 갚을 재간이 없었다. 결국 한국토지신탁으로 넘어가 향후 10년 간 집행이 정지(10년 후 대출금 변재)됐지만 농협에 빌린 400만원과 캐피탈 200만원 빚은 그대로 남아 각각 월 10만원씩 6년째 이자만 갚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취재하는 도중에도 이자를 갚으라는 독촉전화가 와 곤욕스런 표정을 지었다.
현재 친구의 도움으로 단칸방을 얻어 보증금 없이 월20만원을 내고 있는 그는 딸을 잃은 슬픔과 아내의 자살로 인한 충격,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보호2종)로 등록돼 보조금이 나오지만 월 3만원의 돈으로는 트럭 기름 값도 댈 수 없는 형편이다. 더욱이 목 디스크와 만성 관절염으로 매일 약(진통제)을 먹고 있기 때문에 공사판에서 허드렛일을 하기도 쉽지 않다.

송씨는 “수년째 이 일에 매달렸지만 딸에 대한 결정적 제보도,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다보니 희망이 안 보인다”며 “왜 우리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세상이 원망스럽다”고 절규했다.  

그는 딸이 실종되던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송혜희 양은 지난 1999년 2월13일 오후 5시30분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친구의 배웅을 받고 밤 10시 경기도 송탄시 서정리에서 막차를 탄 후 10분 후 집이 있는 평택시 도일동 하리부락 입구(주유소 앞)에서 하차했다. 이후 혜희 양은 행방불명됐다. 

송씨에 따르면 하리부락입구에서 집까지는 1km가 넘는 거리로 15분~20분 정도 걸어야한다. 당시 주변은 야산으로 둘러싸인 인적 드문 곳으로 가로등도 없고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어 여고생이 밤늦게 걸어오기에는 위험한 곳이었다. 때문에 송씨는 밤11시가 되도록 혜희 양이 들어오지 않자 딸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다’는 말만 돌아왔다. 다음날 오전 6시경 파출소지구대에 실종신고를 한 후 사건 당일 버스를 운전했던 기사를 찾아갔다.

▲  송혜희 실종 전단지 © 브레이크뉴스

버스기사는 혜희 양이 하리부락 입구에서 하차한 후 도로를 건너 마을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는 말과 함께 30대 초반의 한 남성이 같이 하차했다는 말을 했다. 운전기사에 따르면 오리털 파카에 모자를 쓴 30대 남성이 술이 취한 상태로 평택시내에서 버스를 탔다는 것. 이곳에 사는 주민이 아닌 것 같아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어봤고 그는 도일동 하리부락까지 간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후 예희 양과 함께 버스를 내린 남자는 도로를 건너지 않고 지하 도로 들어갔다고 한다.

송씨는 “도로를 건너든 지하도로 가든 어차피 방향은 하리마을 쪽이다. 설날을 3일 앞둔 시점이라 부모를 뵈러 온 귀성객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을사람들을 찾아가 물어봤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고 탄식했다. 그는 “30대 남성이 범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 딸을 마지막으로 본 최후목격자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찾으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실종신고를 받은 경찰은 주변 탐문조사를 벌이는 한편 일주일간 수색대를 파견, 인근 야산을 뒤졌다. 하지만 혜희 양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단서가 될 만한 증거도 없고 30대 남성의 인상착의도 불명확했으며 당시 상황을 목격한 다른 목격자가 나오지 않아 수사는 미궁에 빠졌다.

송씨는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가축사육일(개 100여 마리 사육?판매)을 접고 전단지와 플래카드를 만들었다. 이후 아내와 함께 트럭을 몰고 딸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4~5년 동안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우고 술로 슬픔을 달래며 정처 없이 전국을 헤맸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심장판막증과 관절염을 앓고 있던 아내는 고통스러운 나머지 잠을 자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때문에 병으로 인한 고통과 딸을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매일 술을 마셨고 결국 알코올중독에 걸렸다. 급기야 우울증에 걸린 아내는 농약을 먹고 자살했다.
 
딸 찾는 일 그만둘 수 없어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그는 충격과 비통함에 한 동안 술로 지냈다. 하지만 슬픔도 잠시 딸을 찾는 일에 더욱 매달렸다. 딸을 찾는 것만이 아내의 죽음을 보상받는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8년 전 (사)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 나주봉 회장을 만난 후 수차례 방송에 출연해 송혜희 실종사건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했다. 하지만 돈을 노리거나 장난전화 등의 허위제보만 해올 뿐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그에 따르면 담당경찰서 형사반장을 통해 충북 청주에서 딸을 봤다는 제보를 받고 밤 2시경 그곳을 찾아갔으나 장난전화였다고 한다. 또한 충남 초치원에 소재한 보훈병원에서 여자 시신이 발견됐다는 얘기를 듣고 가봤으나 딸보다 키가 훨씬 작아 되돌아 왔다는 것. 이러기를 수차례 반복했고 돈을 노린 허위전화도 많았다.

충남에 있는 모 다방에서 일하는 것을 봤다며 300만원을 주면 딸이 일하는 곳을 알려주겠다고 해 급전을 마련해 찾아갔으나 거짓제보였다. 전남에서는 딸이 곧 섬에 팔려간다며 500만원을 가져오라고 해 급히 내려갔지만 이 또한 허사였다. 방송 이후 다방, 술집, 사창가 등을 거론하며 딸을 찾고 싶으면 돈을 가져오라는 전화를 수도 없이 받았다고 송씨는 씁쓸해했다.

그는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단 한번이라도 생각했다면 이런 몰지각한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자식이, 부모가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바라는 실종자가족들의 아픔을 더는 농락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분개했다. 또한 실종자를 찾아주겠다며 무속인들을 데리고 촬영요청을 해오는 일부 방송행태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최근에도 모 케이블 tv pd가 무속인 4명을 데려와 3일 동안 촬영을 해갔는데 무속인들이 평택경찰서와 지구대, 딸이 다니던 학교와 교사 등 관계자들을 모두 만나고 촬영 마지막 날에는 ‘아내의 원혼을 달래지 않으면 딸을 찾을 수 없다’며 천도제를 지냈다는 것. 하지만 그중 의견이 맞지 않아 제명된 한명의 무속인이 ‘살아있는 사람인데 왜 천도제를 지내느냐’고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송씨는 “담당 pd가 방영할 수 있도록 사정하길래 그러라고 했는데 이후 방영일자나 시간에 대해 물어봤지만 ‘방송시간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둥 말을 회피했다”며 “우리 아이 사건이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촬영에 응했을 뿐이다. 더는 방송에 나가고 싶지 않다”고 지친 기색을 내비쳤다.

그는 “혜희는 학교에서 1~2등을 할 만큼 영특해 국회의원으로부터 장학금까지 받았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두 딸은 내게 보배였고 전부였다. 둘째딸이 실종된 후 우리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며 눈물을 흘렸다.

송씨는 큰 딸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안쓰러워했다. 혜희양 실종 당시 직장에 다니던 큰 딸은 틈틈이 부모를 도와 전단을 돌리며 동생을 찾아나섰고 지금은 결혼을 해 가정을 꾸렸다고 한다. 그는 “큰 딸이 좋은 남편을 만나 잘 살고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된다. 혼자 지내는 아버지가 맘에 쓰이는지 일주일에 한번은 꼭 찾아온다”고 말했다.

경찰수사 상황에 대해 그는 “수사담당자가 수차례 바뀌었는데 잘 수사하고 있다는 말만 할 뿐 별다른 내용은 없는 것 같다”며 “10년 전 사건이고 단서도 없으니까 경찰에서 얼마나 신경을 써 주겠냐”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실종사건과 관련해 평택경찰서 실종전담반 관계자의 이야기를 듣고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통화를 할 수 없었다.

그는 “군포여대생을 살해한 연쇄살인마 강호순이 체포되면서 혹시 딸의 행방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실락같은 기대를 모았는데 전혀 무관한 사건이더라”며 “이제 이 사건도 공소시효가 3년밖에 남지 않았지만 아직도 실마리를 찾을 수 없어 답답하다”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하루에 담배 세 갑 이상을 피운다는 그는 “딸이 살아있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죽기 전에 딸애 얼굴이라도 보는 게 소원이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인터뷰를 마친 후 그는 일을 하기 위해 청소도구를 챙겼다. 이번 일이 끝나면 그간 얼마간 모은 돈으로 트럭을 몰고 딸을 찾을 거라고 했다. 자신이 찾지 않으면 혜희 양은 우리 사회에서 영영 실종될 것이기 때문이다.
임민희 bravo159@naver.com
 
송혜희양 실종자가족 후원계좌
농협 205030-56-194211 송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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